[을지로의 시간. Episode 3] 아주 오래된 사훈의 힘
[본 스토리는 아이비네트웍스가 추진하는 Project ‘EFC’로, 새롭게 재탄생하는 을지로 일대의 기존 모습과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활용된 사진은 아이비네트웍스가 동의를 구하고 점점 사라질 풍경을 직접 촬영한 수천장의 사진 중에서 발췌했습니다.]
누군가 직접 쓴 사훈이었다. 근무 중인 이 회사 직원분은 알고 계실 것 같았다.
“회사를 창립하신 회장님께서 쓰신 겁니다. 이제 일흔이 넘으셨죠….”
사훈은 대략 A3 크기의 액자 두 개로 만들어져 벽에 걸려 있었다. 하나는 명사로, 다른 하나는 문장으로 풀어 써서 누구라도 쉽게 사훈의 본의를 알아차리게 했다. 사훈이 적힌 종이는 빛이 바래고 또 바래서 갈색의 나무 액자 틀만큼 어두워질 기세였다. 그렇지만 액자 유리 덕분에 때때로 반짝거렸다.
이 정도의 필체면 회장님의 취미는 서예였을 테다. 모르긴 해도 회장님은 이 회사에 인생 전부를 걸었을 테다. 긴 시간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마침내 반듯하게 정제된 생각을 새하얀 종이 위에 써 내려갈 때, 그 남다른 각오는 날카롭게 반짝이는 눈빛과 다부진 입매, 그리고 약간은 떨리는 붓끝으로 드러났을 테다.
일산에 공장을 두고 있는 이 회사는 공중화장실이나 빌딩 등에 설치되는 페이퍼 타올기, 장애인손잡이, 세면대, 휴지통 등을 만든다고 했다. 금속 세면대는 한때 병원에서 꽤 인기가 좋았다고.
훗날 홈페이지를 찾아 들어가보니 나름대로 최신 트렌드를 반영한 디자인이 눈에 띈다. 회사 설립연도는 1970년대. 얼굴 한번 뵌 적 없는 회장님인데도 일에 대한 뜨거운 집념이 여전히 생생하게 느껴지는 건 뭘까.
촬영일=2022.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