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1946
'을지로' 라고 불린 첫 해. 이 역사의 공간에 아이비네웍스가 함께 합니다

그러다 좁은 계단을 만났다

2023-03-19

[을지로의 시간. Episode 4] 그러다 좁은 계단을 만났다


[본 스토리는 아이비네트웍스가 추진하는 Project ‘EFC’로, 새롭게 재탄생하는 을지로 일대의 기존 모습과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활용된 사진은 아이비네트웍스가 동의를 구하고 점점 사라질 풍경을 직접 촬영한 수천장의 사진 중에서 발췌했습니다.] 



을지로9길과 삼일대로12길 갈림길에서 바라본 삼원빌딩(서울시 중구 을지로9길 14)은 제법 기세가 좋았다.  
 


기둥과 슬래브를 튀어나오게 해서 의도적으로 깊은 그림자를 만들고 타일로 마감한 입면은 1950~60년대에 지어진 보통의 건축형식이라 행인의 시선을 끄는 비범함은 이제 유효기간이 만료되었지만, 큰길을 두 면이나 그것도 길게 접하고 있는 까닭이었다. 


“안은 어떨까.”


아주 오래된 것에 대한 친애의 마음은 이내 내부를 향했다. 눈과 발은 습관처럼 건물에서 가장 높고 가장 널찍하게 생긴 곳 만을 쫓았다. 그러길 대략 10분. 



입구(개구부)는 한없이 작았다. 로비 같은 것도 없다. 을지로9길 쪽에 난 좁은 계단을 밟으면 그대로 2층이고, 3층이었다. 계단은 어찌나 좁은지, 예의를 최대한 갖춰 벽에 바싹 붙는다 해도 마주 오는 사람과 어깨가 가볍게 스칠 정도였다. 


그와 중에 범상치 않은 것 하나가 눈에 들어오니, 그것은 묵직한 돌덩이 같은 철근콘크리트조 난간이었다. 요즘에는 만들기도 어렵고 자리도 많이 차지해 보기 드물다는 철근콘크리트조 난간 말이다. 


“양생한 콘크리트 몸체에 미장공이 흙손이나 기타 도구를 가지고 하나하나 모양을 만든 거예요. 그때는 인건비가 높지 않기도 했고 대체제인 철이나 유리 기술력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아서 구조체로 난간으로 만드는 게 효율적이었어요.”     


실제로 1954년 사용승인 난 삼원빌딩은 건물대장 주구조 칸에 철근콘크리트조로 적혀 있다. 전쟁이 끝난 직후인 1950년대 초반 건축물 대부분은 구하기 쉬운 나무나 벽돌로 지어졌다. 철근콘크리트조는 1950년 후반에 들어서, 그것도 작은 규모로 학교, 공공건축물, 극장, 상가건물 등의 신축사업에서 추진되었으므로 삼원빌딩은 당시 미래지향적으로 지어졌던 셈이다.   
 
“콘크리트 그 차체를 이용해 다양하고 자유로운 건축물을 구현했던 영국의 브루탈리즘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어요. 콘크리트조 난간은 점점 사라져가는 우리나라 근현대사 건축양식의 일면을 엿볼 수 있고 지금은 구현이 어려운 수작업을 통해 완성되었다는 점에서 충분히 기록할 만한 가치가 있죠.”


필자의 질문 횟수가 사그라질 때쯤 이 건축가 겸 교수는 삼원빌딩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게 바로, 이 조각품 같은 레트로 난간이라고 대화의 방점을 찍었다.
잘 만들어진 것은 시간이 지나도 유구한 생명력을 지닌다. 우리는 그것을 단순히 오래전에 만들어진 것을 뜻하는 ‘구제’와 구분해 ‘빈티지’라고 부른다.

by 기획실 커뮤니케이션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