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로의 시간.
Episode 5] 싸고 맛있는 집
[본 스토리는 아이비네트웍스가 추진하는 Project ‘EFC’로, 새롭게 재탄생하는 을지로 일대의 기존 모습과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활용된 사진은 아이비네트웍스가 동의를 구하고 점점 사라질 풍경을 직접 촬영한 수천장의 사진 중에서 발췌했습니다.]
필자는 이 집을 모른다. 점심 무렵이면 을지로9길 일대를 가득 메우던 이 집의 청국장 냄새를 맡아본 적 없고, 불 밝은 창문 너머로 장사 준비하느라 분주하셨을 연세 지긋한 사장님의 모습도 뵌 적 없다.
하지만 외관에서 느껴지는 아우라가 그냥 보리밥 집이 아닌 듯했으니, 예상은 적중했다.
보리밥 집은 근처 직장인에게 인기가 정말 대단했다. 특히 나이 불문 남성들로부터 식지 않는 불멸의 사랑을 받았다. 값싸고 양 많고 맛까지 좋은 게 비결이었다. 메인 메뉴도 날마다 달라졌다.
유명세는 가게 규모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보리밥 집은 동신건물(서울시 중구 을지로9길 22) 두 개 층을 썼다. 2003년에 문을 연 1층 보리밥Ⅰ은 보리밥 전문점으로, 5년이 지난 2008년에 개업한 지하층 보리밥 Ⅱ는 뷔페식 백반집으로 운영했다.
그래도 밥시간이면 늘 만석이었다. 그래서 어디라도 자리가 나면 주인장들은 주문 음식을 위아래로 나르며 찾아온 손님이 허탈이 발길을 되돌리는 일이 없도록 애썼다.
새롭게 재탄생하는 을지로를 위해 작년 여름 가게 문을 닫은 보리밥 집.
곰곰히 생각해보니까, 인기가 이 정도라면 근처에 다시 밥집을 차렸을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정말로 보리밥 집은 도보 10분 거리(서울시 중구 마른내로2길 3)에 있었다.
별다른 장식 없이 녹색으로 ‘보리밥’이라고 간단명료하게 쓴 간판에서 ‘고향의 봄’이 느껴졌다면 너무 멀리 갔을까.
“오시던 손님들 생각해서 가까운 데로 찾다 보니까 규모를 반으로 줄여서 왔어요. 손님요? 고맙게도 많이 오세요. 비결이랄 게 뭐 있나요…. 우리는 좋은 것만 써요. 싼 재료나 조미료로 맛을 내는 걸 못 해요. 성미가 그냥 그래요. ‘뭘 얼마에 사서 얼마에 팔아야 남는다’, 그런 계산 없이 장사해요. 손님이 식사 잘하시고 ‘맛있게 먹었습니다’라고 인사하고 가실 때, 그때 좋죠. 그 맛에 장사해요.”
보리밥 집은 두 자매와 그중 한 분의 아드님까지 세 분이 운영하고 있었고, 주방을 맡으신 사장님께서 방문객의 물음마다 하나하나 답하신다. 믹서기를 돌리고 참기름을 양념통에 아낌없는 붓는 등 잠시라도 쉴 틈 없이 바쁜 와중에도.
“손님들이 편하게 밥 먹었으면 했어요. 뷔페식은 그런 마음으로 한 거예요. 뷔페식으로 하면 손님들이 내 집처럼 양껏 먹을 수 있고, 또 서빙 인건비가 빠지니까 더 싸게 드실 수 있어요. 여기서는 좁아서 뷔폐식은 못 해요. 그래도 밥과 반찬은 맘껏 드시라고 셀프 코너를 만들었어요.”
이제 그만 돌아가려는 필자에게 “밥 먹고 가라”면서 조심스레 “돈은 안 받겠다”라고 말하는 보리밥 집 사장님들.
수십 년간 2,000원, 3,000원에 밥을 파는 착한 밥집 사장님들은 방송에 나와 한결같이 나눔의 행복, 베풂의 즐거움을 고양된 어조로 이야기한다. 싸고 맛있는 을지로 보리밥 집의 인기 비결도 그 언저리에 걸쳐져 있다.
by 기획실 커뮤니케이션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