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1946
'을지로' 라고 불린 첫 해. 이 역사의 공간에 아이비네웍스가 함께 합니다

동네 간판이여, 안녕

2023-04-12

[을지로의 시간. Episode 6]  동네 간판이여, 안녕


[본 스토리는 아이비네트웍스가 추진하는 Project ‘EFC’새롭게 재탄생하는 을지로 일대의 기존 모습과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활용된 사진은 아이비네트웍스가 동의를 구하고 점점 사라질 풍경을 직접 촬영한 수천장의 사진 중에서 발췌했습니다.]


앞마을 집이 엄지손톱 만하게 보이도록 광활했던 들판, 큰비만 오면 물이 범람했던 개울, 때맞춰 요란한 소리를 내지르며 동네를 가로지르던 기차 말고는 볼거리 없던 작은 시골 마을.

시내는 별세계였다. 잘 닦인 아스팔트며 깨끗하게 청소된 가게며, 진열대를 빼곡히 채웠던 수많은 공산품까지, 여태껏 본적 없는 새로운 것들로 가득했다. 종합선물세트와는 비교도 안 되는 황홀감이었다. 해서 지금도 여전히 그 시절을 소환하는 장소와 물건은 필자에게 차고도 넘치니 그중 하나가 ‘네온사인’이다. 

한참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때 봤던 오색찬란 네온사인 간판이 중구 삼일대로 12길에서 회우했다. 




‘미정갈비’. 불고기처럼 국물 자작한 돼지갈비로 그 자리를 35년이나 지킨 미정갈비. 간판만 보고 있어도 기억은 빠르게 고기 굽는 냄새 진동했던 그때의 그 낯선 식당들로 인도했다.       

미정갈비가 자리 잡은 곳은 한국동란 때 폭격을 맞아서 허허벌판이었다. 전재복구를 위한 제1 중앙토지구획정리사업이 이뤄졌고, 그 결과 바로 옆 철공소 골목과는 대조적으로 길이 널찍하고 반듯하다. 

한국 경제의 고도 성장기와 함께 한 간판이 더 있지 않을까.




1954년 사용승인 난 백양빌딩 입구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간판을 발견했다. 모 목재해부학 박사님에 의하면, 소재는 당시 구하기 쉬운 남양재이다. 어느 목재소를 가든 팔던 나왕 판재에 글자를 조심스럽게 쓴 다음 손으로 직접 깎아냈다. 그리고 페인트칠했는데, 페인팅은 보호재 역할도 있지만 시인성을 높이는 목적도 있다.

나무간판은 바로 옆 건물에도 하나 있었다. 그런데 정말로 ‘한국목재방부공업㈜’라고 새긴 이 나무간판 폰트 윤곽선은 백양빌딩의 것과 비교해 매우 매끈하다. 수작업이 아닌 CNC 기계작업한 것이었다.




근현대디자인박물관이 낸 <간판 역사 100년 전 - 간판 눈뜨다>에 따르면, 간판 디자인은 1960년대 산업화와 도시화를 거치면서 법랑, 철재, 목재 등의 다양한 소재가 사용되었다. 1967년에는 네온사인 규제가 해제되어 네온탑과 옥상간판이 도시의 밤 풍경을 만들었다. 1970년대에는 강철 간판이 플라스틱 재료로 대체되기 시작했고, 1988년 올림픽 이후 LED 조명을 사용한 간판이, 2000년대 들어서는 월드컵을 치르며 대형 빌보드 간판과 전광판 간판이 새롭게 선보였다.   



요즘은 가게 성격을 잘 드러내면서 가게 인테리어와 위화감 없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간판이 트렌드이다. 이 동네에서라면 화담, 도이농, 순심김밥, 아재커피 등을 꼽을 수 있겠다. 




복고바람을 타고 온 네온사인의 회귀도 주목할 만하다. 다만 지금은 인테리어 소품으로 사용된다는 점이 과거의 네온사인 간판과 다르다. 이런 트렌드는 미정갈비 외부 간판과 카페 IMT 레터링 무드등이 그대로 보여준다.   




간판은 한 시대를 읽을 수 있는 하나의 문화 코드이다. 간판으로 드러나는 업종을 통해 그 시대의 생활사를 엿볼 수 있고, 디자인이나 표현기법, 사용 소재 등을 통해 그 시대의 경제사를 읽을 수 있다. 간판 또한 그 위에서 흐르는 시간을 단단히 잡아 둔다.    

by 기획실 커뮤니케이션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