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두부를 잘라 놓은 듯했다. 길 하나, 정확히는 ‘중구 을지로9길’을 사이에 두고 한쪽은 반짝반짝 빛나는 초고층 건물의 비즈니스 물결이, 다른 한쪽은 철물점이며 노포의 힙지로 감성이 넘실거린다.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을지로 1, 2 지구의 자긍심이라도 세워주듯 듬직하게 서 있는 것은 10층짜리 노란 건물. 그런데 외벽이 참으로 특이하다. 노출 콘크리트 건축의 상징과도 같은 ‘동그란 홈’이 일정하게 났으니, 필경 저 건물은 ‘노출 콘크리트’란 말인가. 그렇다면 저 빛깔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입구 정초석에 1967년 12월 15일이라는 날짜가 선명히 새겨져 있다. 고개를 들어 문인방을 살피니 건물 이름은 ‘강남빌딩’이렷다.
우리나라의 첫 노출 콘크리트 건축물은 1958년 지어진 서강대 본관이다. 건축가는 현대 건축의 아버지 르 코르뷔지에의 제자, 김중업 씨. 그는 제주대 본관(1964), 신당동 서산부인과(1965)에도 이 기법을 적용했으니, 강남빌딩에 노출 콘크리트 기법이 적용되었을 가능성이 연대적으로는 충분하다.
“노출 콘크리트 건물 맞아요. 중간에 리모델링 개념으로 뭘 덧붙였거나 한 것은 아니고요. 노출 콘크리트 기법이 당시 상당히 유행이었어요. 김중업 씨며, 김수근 씨 같은 한국건축을 대표하는 거장들이 즐겨 썼고요.”
K 소장의 말은 인터넷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노출 콘크리트 기법은 1920~30년대 건축 스타일을 특징짓는 주요 요소이다. 간결하면서도 기하학적 조형성을 강조한 모더니즘 사조와 잘 어울렸던 것.
1960년대에는 우리나라에서도 노출 콘크리트 기법이 인기를 끌었다. 경제 성장과 도시화 과정에서 대형 건축물이 많이 지어졌고, 노출 콘크리트 기법은 앞선 현대적 건축물로 각광받았다. 김수근 건축가의 워커힐 힐탑바(1963), 자유반공연맹센터(1964) 등은 지금도 명작으로 손꼽힌다.
“이 건축물도 결코 막 지은 건물이 아니에요. 근린생활시설로 임대수익을 내기 위해 지어진 것으로 보이는데, 지금의 시각에서도 퀄리티가 매우 높아요. 건축 어휘가 뛰어나요. 디테일이 정말 좋네요.“
이어 K 소장은 “아무래도 오래되다 보니 노화되어 페인팅 작업을 거친 듯한데, 처음에는 이 건물 외벽도 노출 콘크리트만의 자연스러운 질감과 색상을 감상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내부는 여러 번의 리모델링을 거친 자국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1층과 2~3층 내장재가 확연히 다르다. 반질반질 광택이 도는 1층 대형 벽타일은, 허리춤까지 올린 테라조(도끼다시) 바닥 마감, 그리고 2~3층의 천연 대리석 벽 마감과 대조를 이룬다. 엘리베이터 도어도, 철재 계단 난간도, 건물의 규모를 다시금 상기시키는 대형 우편 수취함도 요즘의 것이다.
55년이 흘렀지만 강남빌딩은 여전히 말쑥한 모습이다. 워낙 잘 짜인 외벽과 잘 관리된 내부 덕분일 것. 건축에 조예가 깊어 보이는 어느 누리꾼은 이런 강남빌딩을 멋쟁이 노신사라고 불렀다. 찰떡같은 표현이었다.
by 기획실 커뮤니케이션팀